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마지 않는 여아를 끔찍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을 처음 접하고, 제일 먼저 했던 것은 보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웹서핑을 하는 거였다.
그러던 중에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음주강간과 처벌의 형평성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번 조두순 사건과 관련하여 특별히 판사가 형을 가볍게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판사는 법리에 맞게 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 글의 블로거가 미리 밝혔듯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블로거 스스로 법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 글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것을 고려해도 조두순 사건에서는 판사의 판결이 문제가 아니라, 현행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보면 얘기의 흐름은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을 때-물론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게 우선이겠지만-를 대비하여, 또는 이 같은 범죄를 기획하는 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현행 법을 수정하여 형벌을 높이는 쪽으로 논의가 되야 한다.
그러나 주변을 바라봐도 그렇고 인터넷 상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당장 가해자에게 중형을 내리길 바라고, 그렇지 못한 것을 마치 판사 개인의 잘못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어느 새 국민적 이슈가 된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심지어 질세라 대통령께서도 한 마디 한다. 솔직히 이 건은 처리하는데 있어 대통령의 한 마디가 필요한 건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사법권의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말해서는 안되는 건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대해 '잘 얘기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를 욕하고, 현 대통령을 욕하고 있지만, 나는 이번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의식은 거의 성장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금 이번 정부와 똑같은 정부를 세울 수 있으며, 똑같은 수준의 대통령을 뽑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솔직히 지금 수준에서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선 절차와 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시스템을 만들고 만들어진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룰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심정적으로 느끼는 급한 것,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빠른 방법을 찾아서 행하려고 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다소 답답하더라도 참고, 제도 자체를 고치고, 이미 만들어진 제도를 지키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우리가 피흘려 얻어낸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법이라는 공동의 룰, 수많은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법과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이를 지킬 때에만 사회가 약육강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합리적 이성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토의해서 만든 것이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이를 잘 지키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조차 잃어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이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생각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점점 정글로 변해가고 있다. 법과 제도는 단지 권력자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어버리고, 사회의 통치수단은 '힘'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무능력 정당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법적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이를 참 잘 이용하였고, 결국 다수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개혁하나 하지 못했다. 그 때 많은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을 식물정당이라며 욕했다. 즉,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던 국민들은, 국회에서는 머릿수가 힘이니까, 힘을 가진 열린우리당이 맘데로 개혁하지 못하는 것을 무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라는 것만 가지고 법적 절차들을 무시하여 한나라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많은 개혁안을 통과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적으로는 옳은 일을 한 것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자칭 민주투사였던 386의원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욕해왔던 이들과 다를 바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철저하게 법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제한했다. 흔한 방송사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도 참 바보라고 생각될 정도로 무능했고 오히려 끌려 다닌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에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제도를 존중하는 마음 속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 대신 다수의 판단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지금 내 생각이 옳은지 어떻게 아나? 지금 내가 보는 관점이 옳은지 어떻게 아나? 한 100명쯤 모여서 같은 생각을 하면 그게 옳은 생각일까?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존중하다면, 이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감정을 내려놓고 서로가 승복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 거기에 따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미 만들어진 룰이 매우 훌륭하다면 새로 만들 것도 없다. 일단 그 룰에 따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협의를 통해 그 룰을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룰을 집행할 관리자들이, 룰이 뭔지도 모르고 룰을 따를 생각도 없는 것이 현 정부의 모습이니 솔직히 요즘에는 그러한 마음이 전혀 안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세상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조두순 사건 하나에서 여기까지 끌어내는 것이 오버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냄비라고 욕하는 면. 그것이 개별적인 이슈에만 집중하여 결과물을 끌어내는데 급급한 우리의 마음에 기인한다고 본다.
나는 온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그것을 다시금 느낀다. 다행스러운 점은 법무기관에서도 새로운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얘기한 것처럼 이 새 양형기준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모두 고두순 사건에만 몰입하여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시킬까, 또한 모든 성폭행범을 동일선상에 놓고 어떻게 그들에게 가해를 가할까하는 논의만 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이면, 정치권에서도 어떠한 새로운 이슈하나만 던져지면 그에 따라 우르르 끌려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이명박이 떡볶이 먹고 지지율 오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관점이 결과보다는 과정에 비중을 두기 시작할 때, 비로소 모든 분야에서 선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로 쇼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언제든지 우리를 현혹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쌓아온 사회의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지 않나? 이번 정부를 끝으로 이는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고생이 부족한가?
Poseted by 그냥
